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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으로 돌아온 ‘낙상매’ 정수민의 꿈

다이노스 피플 | 2015.12.10


NC 다이노스가 2016 KBO리그 신인 2차 지명회의에서 부산고-시카고 컵스 출신의 해외파 투수를 제일 먼저 선택했다. 호명과 동시에 수많은 유니폼들 사이에서 한 양복차림의 남자가 일어났다. 큰 키와 훤칠한 외모를 가진 남자는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청중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부산-시카고-강원도를 거쳐 1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정수민이 ‘고향팀’인 NC 소속으로 처음 건네는 인사였다.


“드래프트 당일 아침은 긴장도 많이 되고 정말 설렜어요. ‘몇 순위에 지명될까’보다는 ‘어디든 지명만 되면 좋겠다’란 생각만 가득했죠. 뜻밖에도 1라운드에서 지명을 받아 깜짝 놀랐습니다. 게다가 고향팀인 NC 다이노스에서 저를 불러주시다니... 정말 기뻤어요. 현장에 참가한 선수들이 80명 정도 있었는데 그 중엔 제가 제일 기뻐했었던 것 같습니다. (웃음) 특히 제가 NC로 간다고 하니 어머니도 좋아하셨고, 할머니는 눈물까지 보이셨어요.”


‘할머니의 눈물’엔 두 가지 안도감이 숨어있었다. 한동안 팀을 찾지 못했던 손자가 다시 팀을 구했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 손자가 타지에서 고생하는 모습을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야구를 위해 고향을 떠나야 했던 ‘소년’

정수민이 ‘야구선수’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쉴 새 없이 다른 지방으로 가야했다. 그가 나고 자란 김해 한림면은 야구선수가 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했다. 그나마 초등학교-중학교 시절엔 집에서 차로 30분이면 갈 수 있는 김해 내동에 야구팀이 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부턴 점점 집과 멀어지기 시작했다. 당시 창단 5년차였던 김해고 야구부 대신 ‘야구명문고’ 부산고 진학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김해를 떠난 정수민은 부산고에서 더 먼 곳으로 떠나는 티켓을 받았다. 정수민이 뛰던 당시 부산고는 오병일(SK, 개명 후 오수호)-안태경(롯데)-정수민으로 구성된 ‘투수 트로이카’를 앞세워 각종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정수민은 두 친구에 비해 주목을 덜 받았지만, 스카우트에게 자신의 실력을 보여줄 기회가 많았다. 정수민은 졸업과 동시에 미국행 티켓을 선물 받았다. 시카고 컵스가 그를 영입하기로 한 것이다.


“고등학교 때 경기경험이 그리 많지 않았어요. 경험이 부족한 제가 KBO 리그에 진출한다고 해도 많은 기회를 받을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었죠.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컵스에서 제의가 왔어요. 계약을 받자마자 ‘모든 야구선수들의 꿈의 무대인 메이저리그에 한 번 도전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가득했습니다. 사실 성공한다는 마음보다는 저를 시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어요. 그렇게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떠났죠.”


메이저리그의 벽은 높았다. 하지만 ‘성공’이 아닌 ‘시험’을 원했던 정수민은 마이너리그에서만 줄곧 보낸 시간을 ‘야구유학’으로 받아들였다. “메이저리그 도전은 제게 도전이자 추억이에요.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풀 시즌도 보냈고 경기경험도 많이 쌓았습니다(마이너리그 통산 평균자책점 4.14 210⅔이닝 10승 8패). 성격도 많이 바뀌었어요. 예전엔 하루에 몇 마디 안할 정도로 내성적이었는데 미국에서 지내다보니 긍정적이고 밝아졌죠. 미국에서 시간을 허비했다는 생각은 전혀 안 해봤습니다. 지금 제 나이가 대학-군대 코스 밟고 바로 사회에 나오는 나이잖아요? 입단동기들보다 나이는 많지만, 야구엔 정년이 있는 게 아니잖아요(웃음).”


2013년 3월. 정수민은 시카고 컵스에서 방출통보를 받았다. 팀에서는 어깨부상과 병역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인 선수를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둥지를 잃은 정수민에게 두 가지 선택지가 놓였다. 하나는 미국에 남아서 새로운 팀을 찾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한국으로 복귀하는 것이었다. 어느 것이든 쉽지 않은 결정. 하지만 정수민은 전화 한 통에 미련 없이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어릴 때부터 맞벌이하는 부모님 대신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할머니가 그의 한국행을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다. 


정수민은 귀국과 동시에 또다시 먼 곳으로 떠났다. 이번엔 강원도였다. 남자라면 누구나 가야하는 군대를 가기 위해서, 그리고 선수생활 공백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현역 입대를 선택했다. “귀국과 동시에 ‘군 문제를 어떻게든 빨리 해결하자’라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어차피 한번 가는 군대 제대로 해보자 싶어 최전방인 22사단으로 갔어요. 육체적, 정신적으로 많이 힘든 상태에서 입대했는데 군대에서 푹 쉬다가 나왔어요(웃음). 선수들은 대개 10살쯤 야구를 시작하는데 그때부터 은퇴 할 때까지 한 번도 쉴 수 없잖아요. 전 어차피 보내야할 시간을 보내면서 잠시나마 야구와 떨어져 푹 쉴 수 있었습니다.”



아픔을 ‘나만의 경험’으로 승화시킨 소년

귀국과 동시에 빠른 군 입대를 선택한 정수민의 판단은 옳았다. 귀국 이후 소속팀을 찾고 싶어도 2년 동안 국내 팀에 입단 할 수 없었다. (KBO가 야구 유망주들의 무분별한 해외진출을 막기 위해 1999년 1월 이후 해외 진출한 선수들이 대한민국 복귀를 원할 경우 2년의 유예 기간을 거치도록 만들었기 때문.) 유예 기간 동안 병역의 의무를 수행함과 동시에 몸과 마음의 피로도 풀었다. 방출의 주된 원인 중 하나였던 어깨 부상도 휴식을 통해 완전히 떨쳐냈다.


NC 다이노스 스카우트 팀은 ‘이번 드래프트에 참가했던 해외파 선수 중 가장 몸 상태가 좋았다’며 정수민을 호평했다. 가장 좋은 몸상태를 갖출 수 있었다는 것도 빠른 군 입대가 낳은 이점이었다. 정수민은 현역으로 군대를 다녀오며 공익근무요원이나 상근 예비역을 선택한 해외파보다 더 빨리 몸을 만들 수 있었다. 부산고 시절 투수코치였던 이상번 동의대 감독이 자신의 선수들과 함께 훈련 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덕분이다.


좋은 평가는 좋은 결과를 낳았다. 앞서 언급한대로 정수민은 2차 1라운드로 NC의 선택을 받았다. 시카고 컵스 방출 이후 약 2년 5개월 만에 둥지를 찾았다. 그런데 정수민과 NC의 만남은 2015년이 처음이 아니다. 2012년 NC의 진해 캠프에서 함께 훈련한 경험이 있다. 물론 그 당시 정수민에게 NC는 ‘둥지’라기 보다는 ‘정류장’에 가까운 팀이었다.


“NC에 지인이 있어서 미국에 들어가기 전에 1달 반 정도 함께 운동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의 제게 있어 NC는 ‘내가 연습할 곳, 많은 것을 배워서 갈 수 있는 곳’ 정도였어요. 그때는 참 많이 배웠습니다. 미국은 신체 조건들이 좋은 선수들이 많아 ‘밸런스 잘 잡는 법’ 정도만 배웠는데, 여기에선 ‘좋은 밸런스를 기반으로 힘을 잘 쓰는 법’ 같이 상세한 부분을 알 수 있었어요. 역시 전 한국사람이라 한국스타일의 코칭이 맞는 것 같아요(웃음). 좋은 가르침을 받아 미국에서 잘 써먹으려 했는데, 어깨 부상으로 많이 써먹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신인’ 정수민은 다른 동기들보다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팀에 합류했다. 3년전 함께 훈련했던 선수도 많았고, 고향 팀이라 지인도 많았다. 특히 ‘부산고 1년 선배’이자 ‘마누라’였던 김태군은 “니가 다른 팀에 가봤자 어쩌겠냐. 어서와~”라며 익살스럽게 그를 맞이했다.



어른이 되어 돌아온 소년, ‘낙상매의 삶’을 꿈꾸다

‘스프링캠프 명단 진입’. 정수민의 당면 과제다. 내년시즌보다는 눈앞의 목표를 위해 마무리훈련을 열심히 소화중이다. 2년 만에 맛보는 팀 훈련도 순조롭게 적응하고 있고, 자체 청백전경기에서 최고구속이 145km까지 나올 정도로 몸 상태를 끌어올렸다. 


정수민은 더 큰 꿈도 꾸고 있다. ‘자신만의 등번호’를 갖는 것. “저는 최동원 선배님의 11번처럼 영구결번을 갖고 싶어요. 그 번호를 말하면 곧바로 떠오르는 선수, NC하면 곧바로 떠오르는 등번호와 이름을 가진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 정말 오랫동안 꾸준히 잘 던지는 선수가 되어야 하겠죠. 등번호는 기회가 된다면 41번을 받아보고 싶어요. 제 생일이 4월 1일이거든요(웃음). 지금까지 선수생활 하면서 한 번도 써본 적은 없어요.”


조선시대에서 가장 가치 있게 여겼던 ‘낙상매’라는 사냥용 매가 있다. 낙상매에겐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새끼 시절 둥지를 떠나려다가 바닥에 떨어지며 신체에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낙상매는 또 다시 상처받지 않기 위해 더욱 힘차게 날갯짓을 한다. 장애가 없는 매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냥기술을 터득한다. 자신의 아픔을 자신만의 무기로 승화시킨 낙상매는 사람들의 큰 사랑을 받았고, 조선 왕실에서도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정수민은 자신의 야구인생이 ‘낙상매’처럼 되길 바란다. “우연히 책에서 ‘낙상매’이야기를 봤는데 참 와 닿았습니다. 더 먼 곳으로 날아오르려다가 바닥에 떨어지며 상처 입은 낙상매처럼 저도 미국에서 힘든 마이너리그 생활만 하다가 돌아왔으니까요. 저는 그 힘든 시간이 ‘경험’이라는 저만의 무기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장소는 다르지만, 미국에서 경험한 프로생활이 한국에서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경험’이란 제 무기가 ‘고향팀’에게도 큰 힘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저 야구가 좋았던 ‘소년’ 정수민은 머나먼 타지에서 ‘낙상매’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정수민이 진짜 낙상매가 되기 위해 지금 이순간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그런데 낙상매가 조선시대 최고의 매가 된 이유엔 자신의 노력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낙상매의 노력을 알아보고, 높이 날아오를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수민이 고향팀에서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공룡가족들이 많은 관심과 사랑을 보내주길 바란다.


글: NC다이노스 팬 리포터 차원석(notimeover@gmail.com)

사진: NC다이노스 팬 리포터 강정화(kjhjp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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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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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합니다!! 날개를 쫘악 펼치고 힘차게 날아오르시길 바래요! ^^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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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합니다~ ㅎㅎ 정수민 선수. 경험이 있는 만큼 금방 잘 적응하리라 믿습니다. ㅎ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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