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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의 외조카’ 윤대영이 NC에서 꿈꾸는 미래

다이노스 in 그라운드 | 2012.10.04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준다. 현역 시절 KIA 선동열 감독의 이름에는 ‘국보급 투수’, ‘무등산 폭격기’가 따라다녔다. 선동열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도, 수식어만 보면 그가 최고의 투수이자 위력적인 강속구를 던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숱한 부상과 고난을 극복한 박철순에겐 ‘불사조’란 별명이 붙었다. 놀라운 완투 능력을 자랑한 故 최동원은 ‘무쇠팔’로, 언제나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준 이만수 SK 감독에겐 ‘헐크’라는 수식어가 붙곤 했다. 그리고 번개 같은 스피드로 그라운드를 휘젓고 다닌 이종범(전 KIA)은 ‘바람의 아들’이라 불렸다.


NC 신인 윤대영(진흥고 졸업)에게도 수식어가 있다. 사람들은 그를 ‘이종범의 외조카’라고 불렀다. 야구공을 처음 손에 쥔 날부터 오늘까지, 윤대영의 이름에는 항상 외삼촌의 명성이 앞에 놓였다. 맹타를 휘두른 날이면 ‘역시 이종범의 조카’라는 말을 들었다. 부진에 빠졌을 때는 ‘삼촌에게 면목이 없겠다‘는 핀잔이 나왔다. 심지어는 한국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결승타로 팀 승리를 이끈 뒤에도, 신문기사 헤드라인은 ’이종범 조카 윤대영‘일 정도였다.

“한때는 ‘이종범 조카’라는 말이 듣기 싫은 때도 있었어요.” 윤대영의 솔직한 심정이다. “잘해도 삼촌, 못해도 삼촌 얘기였으니까요. 제가 잘하면 무조건 앞에 붙는 말이 ‘이종범 조카’였죠. 저학년 때 주전으로 경기에 나가면 ‘삼촌 빽으로 야구한다’는 소리까지 들었어요. 차라리 사람들이 몰랐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곤 했죠.”

어쨌든 야구를 처음 시작한 것도 외삼촌 때문이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TV와 야구장에서 외삼촌이 활약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TV에 나오고 모든 사람의 환호를 받는 저 사람이 내 삼촌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외삼촌은 우상이었고, 그런 삼촌이 하는 야구에 자연스레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서림초등학교 3학년 때 제 발로 야구부에 들어갔다. 직접 해본 야구는 삼촌에게 보고 들은 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었고, 그 뒤로는 한 번도 다른 길을 돌아보지 않고 야구만을 향해 달렸다.

“사실 초등학교 때는 그다지 실력이 뛰어나지 않았어요. 못하는 축에 들었죠.” 윤대영의 얘기다. 야구에 본격적으로 눈을 뜬 건 중학교에 들어가서다. “체격이 좋아지고 몸에 힘이 붙으면서 야구가 는 것 같아요. 어릴 적에는 몸이 호리호리한 편이었거든요. 힘이 좋아지니까 연습량이 많아도 지치지 않고 열심히 할 수 있게 된 거죠.”

야구 실력이 일취월장한 윤대영은 무등중 2학년 때부터 주전 자리를 꿰찼다. 타고난 힘과 강한 어깨를 바탕으로 투수와 외야수를 오가며 맹활약을 펼쳤다. “외삼촌 덕분에 경기 나간다는 소리 안 들으려고 두 배로 열심히 했어요. 실력으로 보여주려구요.”

진흥고에 진학하자 실력은 더 좋아졌다.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2학년 때부터 4번으로 기용됐다. 역시 처음에는 선배들한테 볼멘소리도 들었지만, 성적으로 증명하고 난 뒤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2011년 성적은 13경기에서 타율 .320에 1홈런 11타점. 눈부신 활약을 발판으로 연말에는 일본에서 열린 한국-일본-대만 3개국 청소년야구대회 대표팀에도 발탁되는 기쁨도 누렸다. 비록 한국 대표팀은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윤대영만큼은 예외였다. TV를 통해 중계된 이 대회에서 윤대영은 대만과 일본 투수들을 상대로 ‘미친 존재감’을 과시했다. 야구팬들에게 윤대영이란 이름 석자를 확실하게 각인시킨 계기였다.

하지만 윤대영의 맹활약 뒤에는 아픔도 뒤따랐다. 발목 부상을 당한 상태로 대회에 출전한 게 화근이었다. “대회 당시에 발목에 테이핑을 한 채로 경기를 치렀어요. 다녀온 뒤에는 발목이 아파서 한동안 쉬었죠. 그런데 안 좋은 자세로 계속 걷고 뛰다 보니까 그게 허리 통증으로 이어졌어요. 그러다 보니 몸의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졌구요. 덕분에 올해 내내 부진을 면치 못했죠.”

심리적인 부담감도 윤대영을 괴롭혔다. 사람들의 높아진 기대치와 스스로의 욕심이 원인이었다. “더 잘해야겠다는,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에 맴돌았어요. 말로는 신경 안 쓴다고 했지만, 막상 경기장에서 스카우트분들이 보는 앞에 나가면 말처럼 되지 않더라구요.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고, 난생 처음 머릿속이 하얘지는 경험도 했어요. 더 완벽해지려는 욕심에 단점을 고치려다보니, 제 장점을 잊어버린 것도 문제였던 것 같아요.”

한 고교 감독은 “자질은 좋은 선수인데 너무 생각이 많은 것 같다”고 윤대영을 평한 바 있다. 윤대영도 이를 안다. 슬럼프 탈출을 위해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문제를 깨달았다고 한다. “저 혼자 앓고 있었던 거에요. 야구는 투수와의 싸움인데, 저는 투수가 아닌 제 단점과 싸우고 있었던 거죠. 왼쪽 팔꿈치가 들리는 게 제 단점이라서, 그걸 고치려고 무진 애를 썼거든요. 공이 오는데 머리에서는 타격폼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제 타이밍에 공을 칠 수가 없었죠. 잘 맞을 때는 그런 의식 없이 공이 오면 자동으로 배트가 나가잖아요.”

길고 깊은 수렁에서 허덕이던 윤대영이 슬럼프 탈출의 실마리를 찾은 것은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 충훈고전. 이날도 경기 초반은 부진했다. 첫 타석 볼넷, 두 번째 타석 희생타를 친 윤대영은 5회 세 번째 타석에선 2사 3루 찬스에서 삼진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팀이 2-1로 역전에 성공한 7회 네 번째 타석은 달랐다. 윤대영은 투볼에서 충훈고 선발 김홍경의 3루째를 잡아당겨, 수원야구장 좌측 담장을 훌쩍 넘는 쐐기 홈런을 터뜨렸다. 잃었던 타격감과 자신감을 다시 찾은 귀중한 홈런이었다.

“다행히 대통령배를 앞두고 타격감이 다시 돌아왔어요. 세계청소년대회 대표팀에 합류했을 때는 다시 예전의 좋았던 때로 돌아가 있었죠.” 여기에 프로야구 신인드래프트에서는 NC 다이노스의 지명을 받는 행운도 따랐다. 윤대영은 이를 “행운”이라 했다. “NC에 가고 싶었어요. 학교 선배인 (나)성범이 형도 잘하고 있고, 저랑 친한 1년 선배 (김)성욱 형도 있구요. 이따금 NC 선배들이 진흥고에 와서 연습하곤 했는데, 훈련하는 모습에서 야구에 대한 절실함이 느껴졌어요. 또 새로 시작하는 팀이니까 그만큼 기회도 많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발 NC였으면, 하고 마음 속으로 바라고 있었죠.“

슬럼프에서 벗어나 진로 고민까지 덜어낸 윤대영은 대표팀에서 자신의 진가를 발휘했다. 처음으로 한국에서 열린 이 대회에서 윤대영은 첫 경기 베네수엘라전부터 펄펄 날아다녔다. 3회 이날의 결승타가 된 좌전 적시타를 쳐낸데 이어 기민한 주루플레이로 득점까지 성공하며 팀의 득점 전부를 혼자 책임졌다. 또 세계 최강 미국과의 경기에서는 6회말 2사 만루에서 싹쓸이 3타점 2루타를 터뜨려(6-2) 해결사의 면모도 과시했다. 여기에 일본과의 마지막 5-6위 결정전에서는 9회 쐐기 솔로홈런을 쳐내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대회 내내 붙박이 4번타자로 출전하며 1홈런 8타점의 만점 활약.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으로 국제대회 맹활약으로 야구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는데 성공했다.

대표팀에서 펄펄 나는 동안에도 ‘이종범의 조카’라는 꼬리표는 변함없이 윤대영을 따라다녔다. 윤대영을 다룬 기사 제목에는 언제나 ‘이종범 조카’ ‘바람의 조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기자들이 대회 기간 가장 많이 물어본 질문도 외삼촌과의 관계, 외삼촌이 끼친 영향 같은 것들이었다. “외삼촌이 워낙 대단한 선수였잖아요.” 윤대영이 멋쩍은 듯이 웃으며 말했다. “한때는 외삼촌과 비교당하는 게 스트레스일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떨쳐 버렸죠. 중고등학교 때부터 겪으면서 느낀 건데, 다 제가 하기에 달린 것 같아요. 제가 지금보다 더 잘하면 되는 것 아닐까요?”

사실 윤대영과 외삼촌 이종범은 같은 야구선수라는 점 외에는 비슷한 점이 별로 없다. 성격부터 체격조건, 포지션과 야구 스타일도 전혀 딴판이다. 삼촌이 바람같은 스피드로 그라운드를 휘저은 ‘바람의 아들’이었다면, 큰 체구에 막강한 배팅 파워를 자랑하는 윤대영에게는 ‘천둥의 아들’ 같은 말이 더 어울린다. “외삼촌도 그걸 아시는지, 저한테 야구 기술적인 면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를 안 하세요. 그보다는 선수로서 지녀야 할 마음가짐이나 훈련 태도에 대해서 자주 조언해 주시죠. 항상 겸손해라, 선수이기 전에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요. 그리고 기본기의 중요성도 강조하시구요.”

윤대영은 지금도 외삼촌 이종범의 은퇴식을 잊지 못한다. 그날 행사에서 윤대영은 가족 대표로 20년간 수고한 외삼촌에게 꽃다발을 건넸다. 수많은 팬들과 동료, 후배들이 이종범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정말 멋있었어요. 그렇게 한 팀에서 오랫동안 활약한 뒤에 박수를 받으면서 은퇴식을 하는 삼촌의 모습이 부러웠죠.” 윤대영이 NC에서 이종범 같은 선수가 되기를 꿈꾸는 이유다. “KIA에서 은퇴식을 한 삼촌처럼, 저도 NC에서 끝까지 남아서 은퇴식을 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NC에서 많은 활약을 하면서, 오랫동안 사랑받는 선수로 남고 싶어요. 그게 NC 선수로서 앞으로의 제 목표입니다.”

외삼촌과 조카는 피보다 더 진한 야구의 끈으로 단단하게 이어져 있다. 이제 내년부터 시작될 NC의 역사에서, 윤대영은 외삼촌이 야구계에 남긴 커다란 자취를 뒤따르기 위해 전력을 다할 참이다. 그 꿈이 이뤄지는 날, 윤대영의 이름 앞에는 ‘이종범의 조카’가 아닌 새로운 수식어가 붙게 될 것이다.


인터뷰 진행: 김명선, 서우리, 배지헌
인터뷰 정리: 배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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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
오래된 타이거즈팬이자 이종범의 팬으로서, 윤대영선수가 앞으로 NC에서 정말 잘 성장해서 최고의 타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바람대로 NC에서 오래도록 좋은 선수로 뛰다가 은퇴하는 것도 바라지만, 혹시 기회가 된다면 호랑이 옷을 입고 뛰는 모습도 꼭 보고싶네요. 그러나 어느 팀에서 뛰건 응원하겠습니다. 윤대영 화이팅!! 댓글
이종범 선수 그 호남방언으로 선수이기 전에 인간이 되어야한다 라고 하는부분 음성지원 되네요ㅎㅎ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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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에서는 이제 이종범의 외조카가 아닌 NC의 강타자라는 수식어를 들을 수 있기를 빕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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